공주시 원도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제민천을 따라 가볍게 걸어보자. 지역 식자재로 정갈하게 차려낸 한 끼, 취향이 묻어나는 기념품 숍, 질문에 책으로 답하는 서점 그리고 공주의 밤을 주인공 삼은 커피와 디저트까지. 오감을 깨우는 다정한 공간들이 골목마다 펼쳐지는 제민천은 부여와 공주를 여행하는 MZ세대의 트렌디한 동네로 주목받고 있다.
글 : 유선우 사진 : 조지영
공주의 사계절을 담은 제철 한상, 사계다락
사계다락은 지역 식자재를 활용한 제철 요리를 통해 계절 미각을 보여준다. 미식 브랜드 사계반상이 올해 봄에 문을 연 두번째 공간으로, 주방 다락에서 이름을 차용했다고 한다. 2022년에 공주로 내려와 메뉴 개발자로 일했던 주인장은 공주를 오랫동안 계획했던 F&B 브랜드 창업의 무대로 삼았다. 공주 노인회관 자리에 먼저 문을 열었던 첫 번째 공간 사계반상은 현재 메뉴 개발 장소이자 행사 시설로 이용된다고. 지금껏 창의적인 미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한식 3코스, 미식 투어, 공주에게 맡김차림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입간판을 찾아 들어간 사계다락에선 통창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밝은 분위기 속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테이블은 6개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지만 예약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운영의 효율을 높였다. 대부분 예약석이라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이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공주산 고맛나루 쌀로 밥을 짓고, 지역 시장 내 방앗간에서 공수한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주민과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식사는 가지, 오이, 알감자 등 밑반찬과 함께 깔끔하고 정갈하게 나온다. 공주 한우로 만든 섭 산적 반상과 계절마다 달라지는 계절 메뉴가 이 집의 시그니처. 올여름의 계절 메뉴는 단맛이 좋은 초당 옥수수를 콩국수처럼 요리한 초당콘국수다. 반상메뉴는 점심식사로 제격이지만, 취향에 따라 반주를 곁들이고 싶다면 충청 지역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도 선택해볼 수 있다.
충남 공주시 웅진로 119-1 1층
화~일요일 11:30am~8:30pm(2:30pm~4:30pm 브레이크 타임, 매주 월요일 휴무)
섭 산적 반상 1만5,000원, 초당콘국수 1만3,000원
단편소설처럼 이야기가 모인 곳, 단편선
사계다락과 같은 건물 2층에 자리한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이다. 좁게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문에 작게 난 창 너머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물건들이 말을 건네는 듯하다. 가게 이름 단편선은 <톨스토이 단편선>에서 따왔다. 한 권의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처럼 물건이 가진 각각의 이야기를 단편집처럼 한 곳에 모은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운영자의 취향이 담긴 생활용품부터 기념품까지 단편선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진열되어 있다.
수제 도기 그릇과 잔, 화병과 수세미 같은 라이프 스타일 소품부터 편지지, 엽서와 노트 같은 문구류까지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물건이 구매욕을 자극한다.
밤 모양 수저 받침과 종지 그릇 등 공주 밤을 모티브로 삼은 기념품 역시 취향에 맞게 구매할 수 있도록 고민한 섬세함이 엿보인다. 전형적인 기념품보다는 오히려 공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을 판매하고 싶었다는 운영자의 의도처럼, 생소한 공간을 탐방하듯 찾아주는 이들이 꽤 많다고. 북바인딩 수업으로 여행 노트를 만들거나, 종이를 접고 바늘로 실을 꿰어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클래스도 진행 중이다. 단편집을 읽기 전의 궁금한 호기심을 가득 안고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충남 공주시 웅진로 119-1 2층
12:00pm~7:00pm(화요일 휴무)
책으로 건네는 마음 처방전, 책방 잇다
나태주 시인의 고향답게 공주 원도심 골목길에는 문학의 정취가 은은히 배어 있다. 책방 잇다가 자리한 ‘잠자리가 머물다 간 골목’ 역시 마찬가지. 나태주 시인의 시구가 발길을 붙드는 벽화를 이웃삼아 독립서점 책방 잇다가 모습을 보인다. 책과 사람, 문장과 삶이 인연처럼 이어져 있다고 믿어 책방이라는 단어 뒤에 잇다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다.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과 구들목 같은 작은 방이 남아 있는 이 한옥은 오랜 세월 다양한 가게로 존재해왔다고. 서울에서의 바쁜 직장 생활을 접고 공주에 정착한 서점지기는 숨가쁜 시계바늘을 멈추고 느리게 머물다 갈 수 있는 장소로 이 자리를 택했다.
동네 서점의 매력은 서점지기의 취향과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 선정 방식이다. 궁금증이나 고민이 생기면 일단 책을 펼쳐본다는 서점지기는 ‘질문’이라는 키워드로 서가를 채운다. ‘월급때문에 다니지만 회사 생활이 괴로워요’ ‘사랑이 어렵고, 연애가 힘들어요’ 책장마다 붙어 있는 노란 메모에는 누군가의 고민과 질문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처럼 몇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감정 쓰레기통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적어 내려놓는 테이블과, 방문한 이들이 빼곡히 남긴 필사노트는 이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가는 공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책방 한쪽에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고, 핸드드립 커피 또는 잎차같은 음료도 판매 중이다.
충남 공주시 웅진로 145-1 1층
11:30am~7:30pm(매주 수요일 휴무)
핸드드립 커피 4,500원부터, 잎차(하동 쑥차 외 3종) 5,000원
왕밤빵으로 공주 기념품 완성, 체스넛프렌즈
2층 한옥 건물에 자리 잡은 체스넛프렌즈는 밤을 테마로 한 베이커리 카페다. 작년 2월, 공주 로컬 기업 퍼즐랩이 지역의 특산물과 이야기를 담은 F&B 브랜드를 만들고자 체스넛프렌즈를 열었다. 공주에 기념품이 될만한 시그니처 베이커리가 마땅히 없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개업을 결심했다고. 비교적 오픈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공주 주민 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 소문을 듣고 온 이들 덕에 이제는 오후 2시가 채 되기 전에 인기 빵이 품절되는 베이커리 명소가 되었다.
체스넛프렌즈의 모든 메뉴는 제빵사와 직원이 함께 아이디어를 모아 직접 개발한다. 부드러운 밤크림과 고소한 밤우유에 에스프레소 샷을 더한 밤 크림 라떼, 카페인을 뺀 밤우유가 대표 메뉴다. 이에 더해 밤을 활용한 밤크림빵, 왕밤빵 등 다양한 베이커리를 곁들이면 밤으로 유명한 공주에 온 것이 한층 실감나는 듯하다. 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말차, 유자, 팥 등 계절 식자재를 활용한 신메뉴를 선보여 일년내내 제민천의 휴게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충남 공주시 봉황로 64
8:00am~9:00pm(월요일 휴무)
밤크림라떼 6,500원, 왕밤빵 5,000원, 밤크림빵 4,200원
공주 주민들의 사랑 길, 제민천 산책로
제민천은 공주 금학동에서 발원해 금성동의 금강으로 유입되는 4.2킬로미터의 생태 하천이다. 공주 원도심에서 어디를 가든 제민천을 거치지 않는 법이 없어 일대 주민들에겐 친수 공간이자 여행자에겐 공주 원도심 여행의 거점 역할을 한다.
제민천변 양옆으로 공주목 관아, 충청감영 등 고려와 조선 시대의 주요 관청부터 공주시청, 공주고등학교, 공주의료원 등 공주의 근대를 연 주요 시설이 들어서 있다. 공주로 유학온 학생들이 머물던 하숙촌 역시 제민천 일대에 자리했다고.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양 옆으로 낮게 난 마을 건물들, 여러 상점, 재치 있는 벽화와 조형물 그리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까지 공주 원도심의 여유와 활기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